아프니까 청춘이다? 슬프니까 현실이다.. 평범한 30대의 이야기

내 나이 이제 34살.
안정된 직장.. 이쁜 마누라.. 조그만 전세집.. 그리고 2주뒤면 내 생애 첫 차를 갖는..
넉넉하진 않지만 부족하지 않는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오늘 퇴근하는 길 갑자기 슬픈 생각이 든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꿈이 없다.. 희망도 없다.. 의욕도 없다..

어린시절 열정이 넘치고 자신감이 넘쳤던 내 모습은 이제 사라졌다.
단지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고.. 매일 매일 넘쳐나는 일을 처리하고.. 그냥 반복되는 의미없는 일상..

다들 그렇게 산다.. 삼십대에 느끼는 통과의례다.
이런 말은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슬프다.. 차라리 20대 청춘일때 아팠던 그 시절이 그립다.
꿈이 있고 희망이 있고 의욕이 넘치던.. 하지만 많이 좌절하고 상처받아 아파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안정을 찾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지금은 현실이다.
그래서 슬프다.

The End of Canada Life 일탈 in Canada

캐나다 생활을 정리한지 1년이 다되가는데.. 블로그에 이제야 올린다.
역시 현실로 돌아오면 시간의 여유가 없어지나 보다.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캐나다의 일탈 생활에서 만나게 된 한 여인과..
그것도 다른 국적의 여인과 한국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고 새 출발을 하게 됐다.

그럼 얼마 쓰진 않았지만 이 <일탈 in Canada> 폴더도 끝인건가?

이제 신혼 2달차!!
아직은 즐겁다... 이 즐거움, 행복함이 오래갈 수 있길 노력해야겠다.
그리고 다시 블로그를 시작해 봐야겠다. 왜냐구??

태블릿PC를 얻었으니까~~~ ^^;
갤탭이라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

왠만하면 한국 회사에서 일하지 마세요? (밴쿠버 조선일보 10월 9일자 기고문)

이곳에서 외국 친구들을 만나다 보니.. 어린 외국 친구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정말 한국 사람으로써 대신 사과를 하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들을 가끔 듣곤 했다.
배운 것이 홍보인지라 이곳 지역 신문에 기고문을 하나 작성해 보내봤다.


왠만하면 한국 회사에서 일하지 말아요?
밴쿠버 한국인 유학생, 윤동민

 

캐나다인들 손에 들려있는 한국 브랜드의 핸드폰, 국제공항에서 본 한국 기업들의 광고, 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을 칭찬하는 캐나다인들 등.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을 잠시 중단하고 밴쿠버 땅을 처음 밟은 순간, 내 자신이 한국인이란 사실을 자랑스럽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만 4개월 동안 많은 외국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러한 자부심이 점점 약해져가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얼마전 밴쿠버에서 정착해 살고 있는 한 외국인 친구를 만났다. 캐나다에 온 자국민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업무인 그 사람은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고 한다. “왠만하면 한국 회사에서는 일하지 말아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땐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나 역시도 외국 친구들에게 왠만하면 한국 회사에서는 일하지 말라는 충고를 한다. 사무실내에서의 원치않는 신체적 접촉, 회식 자리에서의 성추행, 임금 착취 등 그들에게 한국 회사란 아직 직장내 성희롱등을 비롯한 많은 부조리가 만연한 곳으로 인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피해자의 대부분은 자국을 떠나 홀로 캐나다에서 공부하는 20대 초반의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은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지금 한국에서는 직장내 성추행을 방지하기 위해 일년에 한번씩 의무적으로 직장내 성희롱 방지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조두순 사건 이후로 성추행, 성폭행과 같은 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도 아끼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밴쿠버는 한국법이 적용되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고민하고 있는 사회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교민사회에 조심스럽게 질문한다.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그 핏줄은 바꿀 수 없다. 이곳 밴쿠버의 한인사회는 캐나다 속의 작은 한국이며 또한, 그들의 국적이 캐나다이던 한국인이던 그 핏줄은 한국이고 사람들은 캐나다 거주 한국인을 한국인으로 생각하고 평가한다. 개인적으로 밴쿠버에서 만나본 외국인들의 대부분은 이곳에서 한국인들을 만나고 ‘친절한 한국인’, ‘매너있는 한국인’,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 등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다.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사랑받는 민족이 되기 위해 행동 하나 하나에 신중을 기하는 한국인이 될 수 있길 희망한다.


PR = Publicity ? 어느 홍보인의 이야기

홍보 바닥을 잠시 떠난지 어느덧 4개월째가 된다.
처음 이 블로그를 시작할때 지난 5년 동안의 나의 커리어 활동을 돌이켜 보며 내가 생각하는 PR에 대해 정리를 해 보려 했는데,
정신없이 캐나다의 생활을 즐기다 보니 이 블로그가 완전 "30대여! 회사를 박차고 인생을 즐겨라!" 이런 주제가 되 버린 것 같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5년차 홍보인이 생각하는 PR을 정리해 보려 한다.

PR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PR의 효용성"에 대해 고민을 해 보았을 것이다.
"지금 내가 작성하고 있는 보도자료, 기획기사, 인터뷰와 같은 퍼블리시티 활동이 과연 클라이언트의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까?"
나도 물론 이러한 고민을 해보았고 아직도 이 고민을 하고 있다.

나의 고민의 중간 결론을 내려보자면..
"효과는 있다! 하지만 그닥 크지는 않다."

그럼 과연 PR은 효과는 있지만 그닥 효율성이 없는 커뮤니케이션 활동일까?
가끔 사람들을 만나면 PR을 단지 퍼블리시티만 하는 활동인 줄 아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우리가 항상 만나는 기자들도 그런 생각을 하니..

만약 "PR=퍼블리시티" 이런 공식이 성립한다면
나는 고객사에게 "PR에 돈 쓰지 마십시요.. 그닥 효과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PR의 역할이란..
"커뮤니케이션 활동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라 본다.

나는 PR인이라면 내가 담당하는 제품, 서비스, 기업, 정책 등을 모두 제 3자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의 것이라기 보다는 남의 것.. 하지만 관심이 있는 남의 것으로 봐야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현 상황을 충분히 판단할 수 있고 앞으로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향을 설정하고 실행하는데 있어서 퍼블리시티란 단지 하나의 수단, 매우 작은 수단일 뿐이다.
단지 표면에 보이기 때문에 그 부분이 가장 커보이는 것일 뿐!

PR인은 현재 자신이 대행사에 있건 기업체에 소속되어 있던 Consultant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내 경우 운이 좋아서인지 PR대행사에 일을 하면서 퍼블리시티 파트와 컨설팅 파트가 있다면 적은 연차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컨설팅 쪽에 가까운 일을 많이 했다. 때문에 PR의 효과성에 있어서 남들보다 적은 고민을 한 것 같다. 퍼블리시티에 치중한 업무를 하는 후배들을 보면 "이거 하나 기사 나온다고 이 제품이 대박을 치는 것도 아니구!! 내가 이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불평 불만을 토로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현재 PR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PR대행사와 함께 일을 하는 고객사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퍼블리시티가 PR의 목적으로 일을 한다면 PR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마케팅에서는 다루기 힘든 세부적인 커뮤니케이션 플래닝면서, 광고보다는 좀더 광범위한 부분을 다룰 수 있는 것이 바로 PR이며 커뮤니케이션의 방향을 설정하고 실행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무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페루 여행을 마치고.. 좌충우돌 페루 여행기

혼자서는 무언가를 하기 싫어했던 내가 30년만에 처음으로 혼자서 페루란 미지의 땅을 여행을 했다.
페루에 대한 아무런 정보와 지식도 없었던 내가 단지 마추픽추를 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무작정 비행기 표를 끊고 떠난 것이다. 처음에는 무섭기도 그리고 외롭기도 했지만 왜 사람들이 혼자서 여행을 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페루..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풀리지 않는 비밀을 간직한 땅' 이라 말하고 싶다.
나스카, 잉카 등 현재까지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고대 유적들이 남겨져 있다.
아름다운 건축 양식 속에 숨겨진 잉카인들의 고통, 산속 오지에 숨겨진 잉카 제국의 흔적, 광활한 황무지에 새겨진 거대한 그림들..
이 모든 것들은 그동안 페루 여행을 동경해 온 나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누군가가 그랬다. 배낭여행 초보자들은 페루여행을 혼자 떠나기에 위험하다. 페루는 위험한 국가이다.
하지만 직접 초보 여행자로서 무작정 페루 여행을 떠나본 나는 이 말을 자신있게 부인하고 싶다.

"수많은 신비를 간직한 페루. 일생에 있어 정말 한번 가볼만한 곳이다. 언어, 치안으로 인한 남미의 불안감(?)은 당연히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순박한 페루 사람들, 신비한 고대 문명들이 있는 페루 땅을 밟는 순간 이러한 불안감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여행기를 정리하면서 올리지 못한 재미있는 사진들을 소개한다.

1. 간지 페루 패션 (퓨마 짝통 - 페루, 라마)

2. 페루의 대형 콘돔 광고 : 우리나라는 이렇게 광고 못하는데..^^
3. 잉카 유적에서 발견된 성과 관련 조형물들
4. 잉카 전통 의상의 소녀
5. 페루의 국민차 티코 :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티코가 어디갔나 했더니..
6. 이렇게 귀여운 것도 먹는다 - 기나아 피그
7. 마추픽추의 흡혈 벌레 : 모기도 아닌 것이 물리면 피가 고인다. 200 ~ 300방은 물린 듯 하다.

8. 잉카 콜라 - 페루에서만 볼 수 있는 잉카 콜라. 레시피는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져 있지만..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듯 ^^
9. 이것은 과연 누구의 주둥이인가? 시장에선 이런 것도 판다. 말 같기도.. 소 같기도..

무계획 좌충우돌 페루 여행기 - 7일차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 좌충우돌 페루 여행기

페루 여행 7일차인 오늘, 드디어 마추픽추를 가게 되었다.
여기까지 온 여정을 생각하면 정말 멀고도 험한 여정이었다. 리마에서의 고독한 여행, 나스카에서의 삐끼 사기 사건, 15시간의 버스 여행, 쿠스코의 고산병 등등.

마추픽추는 1911년,미국의 탐험가 Hiram Bingham이 황금도시를 찾으러 마추픽추 산을 탐험하다 발견한 것이라 한다. 발견했을 당시 그가 생각하던 황금은 없었고 173명의 유골이 마추픽추에 있었다고 한다. 그중 150구는 여자, 23구만이 남자의 유골이었다는데 과연 마추픽추에 살던 남자들은 과연 어디에 가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들은 왜 이런 산속 오지에서 살아야만 했을까? 이곳에도 많은 가설들이 있지만 가장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 것은 스페인 정복자들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남성들은 전쟁에 모두 나가 전사를 해 잉카제국의 피를 잇지 못하고 멸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의 원래 계획은 약 1시간 30분 동안 마추픽추 산을 등반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제 잘못먹은 닭고기 때문에 체력이 떨어져 남들과 같이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버스에서 어떤 미국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마추픽추를 설명하면서 Amazing이란 말은 연발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30분 내내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드디어 마추픽추 입구에 도착. 입구에는 이미 수만은 배낭여행객들이 모여있었다.
입구를 통과해 마추픽추에 들어갔다. 그 입구는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로 나를 인도하는 신비의 문과 같았다.

장장 6시간 동안 마추픽추를 혼자 거닐었다. 잉카인들이 만들어 놓은 돌벽을 만져보기도 하고 방에 들어가 앉아 보기도 하며 잉카인들이 생활했을 과거를 상상해 보았다.



무계획 좌충우돌 페루 여행기 - 6일차 (신비의 잉카 제국) 좌충우돌 페루 여행기

아침에 일어나니 고산병이 어느 정도 적응된 듯 했다. 서둘러 아침을 챙겨먹고 8 30분에 호스텔 라운지로 나갔다. 나와 같이 숙박을 하는 미국인 부부도 함께 있었다. Nick이란 이름의 아저씨였는데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부인은 브라질 사람이라 한다. 이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가 영어 이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Dongmin이란 발음을 하기가 힘든 듯 Tommy라고 발음을 하더라.

버스를 타고 처음 방문한 곳은 피삭(Pisaq). 잉카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유적지이다. 잉카인들은 왜 이런 험난한 산속에 생활터전을 마련했는지 의문이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스페인 침략을 맞서기 위한 것이라는데,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렇게 험난한 생활을 택해야만 했을까?

우리나라의 생활터전이 배산임수 & 좌청룡 우백호라면, 잉카인들의 생활터전은 산과 산 사이의 비탈길에 거주지를 만드는 것이다. 산과 산 사이에 비탈길에 터전을 만들면 멀리서 침략해오는 적을 쉽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특히 밭의 경우는 계단식 농법인데 이 곳에서는 주로 옥수수를 재배했다고 한다.



몇군데 장터를 방문한 후 우리는 페루식 점심 부페를 먹고 울란타이탐보 역으로 향했다. 울란타이탐보 역시 Pisaq과 마찬가지로 잉카인들의 생활터전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여기서는 특히 잉카인들이 돌을 다루는 솜씨를 엿볼 수 있었다. 군대 제대시절 포병이었기 때문에 진지 구축시 돌을 쌓아 올린 경험이 좀 있는데, 이렇게 큰 돌들을 어떻게 옮겼는지, 그리고 어쩜 이렇게 정교하게 돌을 깎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울란타이탐보 관광을 마치고 이번 페루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 잉카 트레일을 탔다. 약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길이 내겐 너무 흥분 됐다. 드디어 내일이면 그 동안 그렇게 한번 와보고 싶던 마추픽추를 내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것이니까. 마추픽추 역에 도착을 하니 날씨가 어두워졌다. 서둘러 숙소를 잡고 오늘 Sacred Valley 여행에서 만난 페루인과 만나 저녁을 먹었다. 리마에서 치과의사를 하고 있는데 쿠스코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봉사활동 단원들과 함께 마추픽추 관광을 왔다고 한다. ,
물론 저녁 식사 이름은 잊어버렸다. 맛은 있었다. 하지만 뭐가 잘못된 것인지 저녁을 먹고 배탈이 나 숙소로 돌아가 약 2시간 동안 화장실을 10번 정도 간 것 같다. 내일 마추픽추 여행을 걱정하며 잠을 청했다.

무계획 좌충우돌 페루 여행기 - 5일차 (천상의 도시<?> 쿠스코) 좌충우돌 페루 여행기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선 페루의 옛 수도인 쿠스코를 거쳐야만 한다. 쿠스코에 도착하니 마추픽추를 보기 위한 관광객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다들 마추픽추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듯 했다. 나도 그러했으니..^^

 

그런데 문제는 고산병! 장장 15시간의 버스여행으로 인한 피곤함, 안데스 산맥을 넘어야 하는 관계로 도로의 절반 이상이 꼬불꼬불한 길을 가야만 했던 관계로 느낀 차 멀미, 그리고 해발 3800미터에 위치한 지형적인 이유로 인한 고산병이 겹쳐 버스에 내리자마자 두통, 복통, 무기력증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옆에 있던 배낭여행객이 같이 택시를 타고 호텔을 잡지 않겠냐고 했지만 모든 것이 귀찮아졌던 나는 따로 할 일이 있다고 그 제안을 거절했다. 완전 최악의 기분이었다. 고산병 약을 먹어보았지만 듣지를 않았다. 택시를 잡고 우선 시내로 들어가 눈에 보이는 호스텔 아무거나 골라잡아 들어가 방을 잡았다. 우선은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추픽추 여행을 포기할 수 없어 호스텔에서 여행사 추천을 해달라고 했다. 여행사에서 제안한 것은 1 2일 여행 코스였다. 내일은 우선 Sacred Valley 투어를 하고 모레 고산병도 극복하고 적응을 하면 마추픽추에 올라가라는 것이다. 1 2일 여행 + 영어 가이드 + 점심 부페 1 + 숙박 + 마추픽추행 버스 등 모두를 포함해 230달러 + 70솔이었다. 여행사 몇 군데를 돌아다니면 20~30불 저렴하게 갈 수 있었겠지만 피곤 + 멀미 + 고산병으로 인해 도저히 다른 곳을 찾을 수 없을 듯 하여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몸은 최악의 컨디션이었지만 어렵게 온 페루, 더 어렵게 온 쿠스코였기에 도저히 방에 틀어박혀 있을 수가 없었다.

 

이 고산병의 증상을 묘사하자면..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우선 정신이 멍하다. 두통도 있다. 그리고 가장 힘든 것은 금방 숨이 찬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있는 호스텔은 2층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면 마치 100미터 달리기를 한 것처럼 숨을 헐떡 거린다. 이게 바로 고산병이다. 천천히 시내를 걸어다니려 했는데 이놈의 도시는 산속에 있는 도시였기 때문에 비탈길이 많았다.

몇걸음 오르다 쉬고 몇걸음 오르다 쉬고를 반복하면서 잉카 박물관도 가고 재래 시장도 가보고 했다. 재래시장에는 약장수도 있더라. 스패니쉬로 말하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대충 이걸 먹으면 귀가 잘 들린다는 뜻 같았다.
재래시장에서는 할머니가 사탕수수를 깎아 팔고 있었다. 사탕 수수를 껌처럼 씹어먹으면 단물이 나왔다. 맛은 있었지만 3~4개를 먹으니 질려서 못먹겠다.

 

갈수록 고산병 증세가 심해지는 듯 하여 잉카 박물관의 직원에게 좋은 치료법을 알려달라 하니 호스텔에 가면 코카티를 줄 테니 그걸 마시면 좀 낳을 것이라 했다. 그 말을 듣고 바로 호스텔로 가 코카티를 주문했다. 코카티는 바로.. 코카인, 마약의 주 성분인 식물이다. 페루에서는 코카잎을 구하는 것이 슈퍼마켓에서 콜라를 구하는 것 보다 훨씬 쉽다. 역시 코카티를 마시고 더욱 효과를 보기 위해 코카 잎을 그냥 씹어 먹었다. 역시 민간요법이 더 좋은 듯, 코카잎 몇 개를 씹고 나니 고산병의 증세가 완화되기 시작했다.

 

저녁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페루에 왔으니 정말 특이한 음식을 먹어보자 하고 페루식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알파카 고기가 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트의 재질이 알파카 인데 그것도 먹을 수가 있다니! 당장 알파카 고기를 시켰다.

 기름기가 하나 없는 고기였다. 한번은 먹을 만 했지만 이젠 안 먹으련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알파카만의 독특한 냄새가 있었다. 경험상 한번 정도는 먹을 만 하다. 레스토랑에선 개그맨 심현섭을 닮은 페루인이 전통 악기를 연주해주었는데 이국적인 분위기가 참 맘에 들었다.

쿠스코 첫날은 10시 정도에 마감하기로 했다. 고산병 때문이다. 내일 아침 8 30분에 호스텔에서 Sacred Valley로 가기 위한 버스를 타야 했기에 늦잠을 잘 수도 없었다.


무계획 좌충우돌 페루 여행기 - 4일차 (2000년의 비밀을 간직한 나스카) 미분류

이제 비밀에 감춰진 페루를 내 눈으로 직접 하기 위해 아침일찍 와카치나 리조트를 떠나 나스카로 향했다. 물론 어제 수리를 맡긴 카메라를 찾으며 피 같은 90( 30달러)을 내야만 했다. 어제 부기투어에서 만난 영국 친구가 새로 산 것보단 적게 들었으니 너무 아쉬워하지 말란다. 하긴 맞는 말이긴 하지^

이까에서 나스카까지는 버스로 약 2시간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 놈의 페루 버스는 매번 연착을 해서 거의 3시간 만에 나스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옆에 앉은 페루 사람이 자신이 여행한 사진을 조그만 카메라로 보여주는데 알아듣지도 못하는 Spanish로 계속 말해서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거의 300장의 사진을 본 것 같다.

 

나스카로 가는 길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였다. 모래와 자갈밖에 그런 황폐한 땅. 이러한 황폐한 땅에 나스카 라인과 그림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나스카에 도착할 때쯤 옆에 앉아있던 페루인이 창밖을 보면서 이곳에 나스카 라인이 있다고 했다. 마치 태평양을 보는 것과 같이 끝이 보이지 않는 벌판에 나스카 라인이 있다니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스카에 도착해 나의 페루 여행에서 최악의 경험을 했다.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경비행기로 안내하겠다는 삐끼를 만났다. 이 녀석이 나를 어느 이상한 곳으로 데려가더니 자기네 회사라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은 바람이 거세서 비행기가 뜨지 못하니 우선 예약을 하고 3시에 자기를 다시 만나자고 했다. 우선 돈을 내라고 해서 가격을 물어보니 300, 100달러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라고 했다. 인터넷에서 100달러에 가까운 돈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왠지 그 사람을 믿을 수 없었다. 300솔을 우선 모두 내야 한다고 했지만 당췌 그 사람을 믿을 수가 없어 50( 17달러)을 디파짓으로 걸어놓기로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받고 다시 나스카 시내로 나와 약 1시간 30분 후 다시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다. 혹시 나스카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절대 삐끼를 따라가지 마세요!!

 

나스카 시내를 거니던 중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지 여행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확인을 해보니 200솔이면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삐끼의 말대로 오늘은 바람이 거세 비행기가 뜨기 힘들다는 말을 했다. 화가 난 맘에 그 삐끼를 찾으러 터미널로 갔다. 당연히 그 놈은 찾을 수 없었다. 전화를 해도 받지도 않고 그 놈의 동료들에게 그 놈이 어디 있는지 말하라고 했지만 리마로 떠났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더라. 20~30분 정도 그 사기꾼 녀석을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결국 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50솔을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놈의 친구들에게 찾아가 그 놈한테 50솔은 필요 없으니 너나 갖어라!”란 말을 하고 현지 여행사로 다시 찾아갔다. 나스카까지 왔는데 나스카 라인을 보지 못한다면 말도 안 되는 지라 몇 개의 그림을 볼 수 있는 타워를 차를 타러 가기로 했다.

 

운이 좋게도 영어를 잘 하는 운전수를 만났다. 원래 타워 2곳만 가는 것인데 보너스로 한군데 더 가주겠다는 조건으로 100솔을 내기로 했다. 이것도 사기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제안이긴 했지만 나스카의 역사에서부터 라인과 그림에 대한 착실한 설명이 있었기에 군말하지 않고 100솔을 주기로 했다.

 

정말 장관이었다. 나스카 문양 바로 옆에 있었지만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던 문양이 타워에 올라가니 그 실체가 나타난 것이다. 처음에 본 그림은 나무문양이었다. 멋졌다. 두 번째 타워에서는 조금 더 많은 문양을 볼 수 있었다. Family란 이름의 나스카 문양이었는데 아이들 장난 같은 그림이었지만 그렇게 큰 그림을 2000년 전에 어떻게 그렸을지 의문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조그만 언덕이었다. 그 곳에서 나스카 라인과 문양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 발을 질질 끌면서 그렸던 그림과 같은 시스템인 듯 했다. 가장 의문인 것은 2000년 전 나스카인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거대한 그림을 그렸으며, 20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 라인과 그림이 없어지지 않느냐는 것이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페루에서는 이 문양을 보존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단지 나스카 라인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전부이다.

 

분명 이러한 그림은 내가 어린 시절 발장난으로 그린 그림처럼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을 텐데 굳이 노력과 힘을 들여 이런 그림을 그린 것은 무엇 때문일까? 수많은 가설들이 있지만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는 비밀이라고 한다.

 

나스카의 비밀을 간직한 채 이번 페루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마추픽추를 가기 위해 저녁 8시 쿠스코행 버스를 탔다. 14시간이 소요되는 대장정의 여행이다. 하루를 꼬빡 새야 하는 버스 여행인 관계로 기존에 탄 보통 버스가 아닌 최고급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비행기 비즈니스 석과 같은 그런 널찍한 좌석이 있는 버스였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밤에 탄 관계로 사람들이 모두 자고 있어 사진을 찍지 못했다.

 

영화 천사와 악마를 보고 일자로 쭉 누워 잠을 청했다.


무계획 좌충우돌 페루 여행기 - 3일차 (無의 아름다움) 좌충우돌 페루 여행기

민박집 아줌마,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아침 일찍 이까(ICA)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Soyuz Peru Bus를 타고 약 7시간 소요되는 거리다. 한국에서도 원래 버스타는 것을 싫어했는데 7시간이나 버스를 타야한다니 정말 갑갑했다. 7시간이라 하면 서울에서 부산보다도 더 먼 거리니까..

 

이까(ICA)로 가는 길은 생전 처음 보는 자연 환경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사막.. 돌과 자갈.. 정말 황량함의 극치였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고 있더라. 물론 극 빈곤층의 사람들이긴 하지만 이런 곳에서도 사람은 살 수 있었다.

 

지루한 여정을 마치고 이까로 도착했다. 이까에는 와까치나란 리조트가 있다. 페루 정부에서 사막을 관광지로 육성하기 위해 만든 리조트라는 말을 듣고 잔뜩 기대를 하고 도착했지만.. 내가 여태까지 보아오던 리조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10분 정도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서 와까치나 리조트로 들어갔다. 난생 처음 보는 사막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정말 풀 한포기, 돌맹이 하나 없는 모래 밖에 없는 곳이다. 사막 한가운데에 오아시스가 있는데 이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리조트가 형성된 것이다. 오아시스에서는 페달보트, 보트를 탈 수 있었다.

(사막투어에서 카메라가 고장나 사진을 찍지 못해 밑의 와카치나 리조트 전경 사진은 인터넷에서 퍼왔어요~ ^^)

 

이곳에서는 부기투어란 사막 투어를 신청했다. 커다란 바퀴와 쇳덩이로 만들어진 사막 투어용 자동차를 타고 사막을 투어 하는 것이다. 안전 벨트를 꼭 매라는 운전수의 말이 있었는데 안전 벨트가 그다지 안전해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사막 투어 자동차를 타고 사막으로 직행!

 

기분 최고였다. 디즈니랜드의 롤러코스터도 이 사막투어 자동차의 흥미진진함을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90도와 가까운 사막 절벽을 오르내리는데 절대 꽉 조여지지 않는 안전 벨트로 인해 내 몸이 이리튀고 저리튀고 했다. 자동차에서 내리니 몸이 경직되었던지 근육이 쑤셨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가본 사막.. 사막엔 모래밖에 없다는 것은 책이나 사진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정말 모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없이 모래밖에 없는 곳.. 사람이 살기 힘든 황폐한 곳이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이곳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기투어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샌드보드! 스노우보드와 비슷하게 모래사막에서 보드를 타는 것이다. 타는 방법은 다양한데 배를 깔고 타는 것이 가장 쉽지만 스피드가 가장 빠르다. 그래도 보드는 당연히 서서 타는 것이 간지! 스노우보드 윤감독의 명성이 있는데 남들처럼 배를 깔고 탈 수가 없어 스노우보드 타듯이 한번 타봤다. 역시.. 잘 타더라.. 내 생각에 서서 타는 사람들 중 내가 제일 잘 탄 것 같다. ㅋㅋ 막판에 엉덩방아를 찧어 찌릿찌릿함이 꼬리뼈에서 뒷골까지 전해지긴 했지만 간지가 생명인지라 전혀 안아픈척 했다. 아는 사람은 알것이다. 스노우보드를 타다가 엉덩방아를 잘 못 찧으면 대변의 욕구가 절정기에 다다른다는 것을..ㅋㅋ

3시간 정도 사막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모래 언덕에서 뒹굴다 보니 카메라에 모래가 잔뜩 들어가 포커스도 안맞고 렌즈도 열리지 않았다. 눈물을 머금고 거금 90솔( 30달러) 내고 카메라 세척을 하기로 했다. 때문에 리조트에서의 사진은 찍을 수 없었다.

 

요즘은 비수기인지 리조트에 사람이 없었다. 클럽이라도 있으면 사람들이랑 좀 만나서 놀기라도 할라 했는데 사람들이 없어서 숙소로 빨리 들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시끄러운 클럽 음악이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눈이 떠진 나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다. 우리 호스텔 안에 클럽이 있던 것이다! 크지는 않았지만 40~50명 정도의 사람들이 춤을 추고 놀기에는 충분했다. 여기서 부기투어를 함께 갔던 사람들은 물론 다른 여행그룹들과 만나 춤을 췄다. 그런데 우리나라와의 클럽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사람들이 많아서 하체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상체를 많이 쓰는 그런 춤을 추었지만 여기서 나오는 음악은 그게 불가능했다. 여기선 상체보다는 하체, , 스텝이 중요했다. 어리버리하게 춤을 추다 못해 부기투어에서 만났던 여자에게 스텝을 가르쳐 달라 하고 기초적인 스텝을 배웠다. 이 클럽에서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이스라엘, 폴란드,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등등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과 만나고 부비부비(?)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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